정림건축문화재단 뉴스레터를 통해 새로운 건축 잡지 『미로』의 창간을 정식으로 알립니다. 『미로』는 한국의 현대 건축의 담론을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잡지입니다. 근작 소개, 건축물과 건축에 대한 비평을 중심으로 한 기존 잡지와 달리, 매호 선정한 주제에 집중하는 글로만 구성되는 텍스트 중심의 잡지입니다. 년 3회(봄, 여름, 가을/겨울) 발행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2호는 일본, 3호는 OMA, 4호는 나무를 다룰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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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는 건축계의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를 담으려 합니다. 비평가, 역사학자, 이론가뿐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건축가들(대형 작업을 하는 건축가에서 건물을 거의 짓지 않는 건축가), 큐레이터, 기획자 등 건축이라는 대단히 넓은 업역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함께 싣고자 합니다. 이 모두가 담론적 실천인 건축의 경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리고 있으니까요. 여러분들도 『미로』에서 예상치 못했고 없었던 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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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라는 제호에는 다층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한국 건축이 처한 상황을 반영합니다. 문제는 많으나 해법도 출구도 보이지 않는 오리무중인 상황을 은유합니다. 한편으로 미로는 대단히 분명한 의도가 있는 지적인 구조물입니다. 『미로』가 다루는 건축물 역시 건축가의 분명한 의도가 담긴 건물일 겁니다. 그러니 제호는 다루는 대상을 빗대는 뜻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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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에 꼭꼭 숨겨둔 참조 대상도 있습니다. 창간호의 주제로 “참조와 인용”을 다루었듯, 잡지 시대 또는 현대 건축의 끝자락에 나온 『미로』도 많은 선례를 참조했습니다. 20세기 후반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탈리아 건축역사학자 만프레도 타푸리의 저서 『구와 미로』(la sfera e il labirinto, 1980)도 그중 하나죠. 타푸리는 완전한 형태의 구(원형)와 미로를 대척점에 두는데요, 한국 현대 건축에서 흠없고 매끈한 구는 존재할 수 없는 신기루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미로를 우선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온전한 건축보다 건축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일들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한편, 신화적 미로(labyrinth)의 설계자 다이달로스(Daedalus)는 건축가, 창작자의 원형적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 인물의 이름을 딴 유서깊은 잡지들이 있습니다.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가 펴내는 잡지는 Daedalus이고요(뿌리는 1846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일에서 출간되는 건축 예술 잡지 중에도 Daidalos가 있습니다. 이들은 대상-미로를 로고로 삼으면서도 제호는 주체-다이달로스를 사용하지요. 요즘은 주체가 아니라 대상의 시대라고들 하니 『미로』도 시대에 발을 맞추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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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주제는 “참조와 인용”입니다. 국문학자 김윤식은 “근대 문학은 이식된 문학”이라는 일제 강점기 평론가 임화의 단언을 극복하는 것을 일생의 화두로 삼았다고 회고했습니다. 1972년 김현과 함께 펴낸 『한국문학사』 등이 그 결과물이지요. 모두가 공유하는 매체로 시대의 공통된 감각을 빚어내며 모종의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근대 문학의 소명으로 여겨졌기에, 이것이 외부에서, 그것도 식민세력의 틀을 통과해 이식된 것이어서는 곤란했습니다. 문학을 건축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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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은 이식된 건축이다”라는 명제는 불안과 불편함을 거의 야기하지 않습니다. 근대 건축, 또는 현대 건축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놓고 종종 화해할 수 없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생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는 드뭅니다. 식민지시기 전후에 지어진 절충주의식 건물이든 해방 후 본격적으로 유입된 모더니즘 건물이든 그것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었으니까요. 자연스레 근대 건축의 중심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대단히 중요해집니다. 김중업과 김종성의 신화와 유산은 그들이 각각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에게 직접 사사했다는 사실에 절대적으로 기대지요. 유럽과 미국(그리고 암묵적인 참조체로서 일본)과 한국 사이의 시차는 한국 건축의 주요 동력원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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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좀처럼 전면에 드러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지어진 현대 건축물입니다. 건축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에서 선배와 스승의 작업을 명시적인 참조점으로 삼는 일이 드물었고, 동시대 한국 비평가나 이론가의 글이 실천을 촉발하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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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너무 흔해서 눈길을 끌지 못했던, 다세대 다가구, 상업시설 등에서 창작의 모티프를 얻는 일군의 건축적 경향이 미약하지만 뚜렷하게 감지됩니다. 창간호는 이 흐름을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무용, 소설,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대 한국에 대한 참조와 인용이 건축에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검토하려는 것이죠. 동시에 정반대의 자리에서 유령처럼 출몰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스위스 건축가 발레리오 올지아티가 마르쿠스 브라이트슈미트와 함께 펴낸 『비참조적 건축』은 최근 한국 건축계,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들의 테제는 올지아티의 이름을 차용해 한국 건축가들의 작업이 표절이라고 저격하는 익명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의해 단순화되어 증폭되기도 합니다. 참조와 비참조 사이의 다양한 입장과 전략을 다루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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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사
『미로 1: 참조와 인용』을 엮으며
자기 참조 이후의 건축 / 김광수
정신분열증과 초-참조적 건축 / 서재원
참조와 인용이라는 이야기 짓기, 건축 짓기 / 김효영
난폭하고 아름다운 이종교배의 상상력 / 임윤택
원하기 때문에 원한다 / 이희준
공간 디자인에서 시간 디자인으로 - 현대 건축에 관한 다섯 가지 테제 / 송률, 크리스티안 슈바이처
베낄 때 GOAT 멘탈 관리 꿀팁 / 전재우
참조적 세계로서 건축의 외부, 비참조적 체계로서 건축의 내부 / 이치훈
생각하듯이 쓰기 / 김사라
참조와 인용에 관한 표류 / 배윤경
인용된 파편적 구상들 / 최원준
이모셔널 솔리드: 건축 지시와 인용에 관하여 / 현명석
가능한 진실할 것: 발레리오 올지아티와 마르쿠스 브라이트슈미트의 『비참조적 건축』 서평 / 강신
매너리즘과 현대 건축 / 콜린 로우 / 곽승찬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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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리스트, 분열증, 참조
『미로 1: 참조와 인용』 연계 포럼 첫 번째 자리는 매너리스트를 자처하는 건축가 김광수, 서재원, 김효영의 이야기를 최원준 숭실대 교수의 진행으로 듣습니다. 창간호에 실린 이들의 글을 바탕으로 하되, 글에 미처 싣지 못한 내밀한 입장을 대화로 풀어내는 자리로 기획했습니다. 매너리스트적 전략은 무엇인가? 철 지난 벤추리식 포스트모더니스트인가? 왜 지금 한국에서 매너리즘적 태도가 불거지는 것일까? 20세기 중후반 매너리즘에 대한 관심과는 무엇이 같고 다른가? 같은 논쟁의 지점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 일시: 2024년 11월 12일(화) 오후 7:30
- 장소: 정림건축문화재단(오프라인)
- 토론: 김광수, 서재원, 김효영
- 모더레이터: 최원준
- 구성: 짧은 발제(10분*3), 토론(60분+)
- 참가비: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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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와 비참조 사이
명시적으로 참조를 드러내는 이들과 달리 비참조적 건축이 이 시대에 적합한 건축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올지아티의 비참조적 건축은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두 번째 포럼은 건축 칼럼니스트 배윤경의 진행으로, 참조와 비참조를 두고 건축가 이치훈, 김사라, 전재우가 함께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건축의 내부와 외부, 창작과 참조, 참조의 전략 등을 비판적으로 또 풍자적으로 개진한 바 있습니다. 이번 포럼은 이미지가 전지구적으로 동시에 유포되는 시대에 무엇이 참조이고 인용인지, 그것이 건축의 경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질문해봅니다.
- 일시: 2024년 11월 19일(화) 오후 7:30
- 장소: 정림건축문화재단(오프라인)
- 토론: 김사라, 이치훈, 전재우
- 모더레이터: 배윤경
- 구성: 짧은 발제(10분*3), 토론(60분+)
- 참가비: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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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정림건축문화재단 hello@junglim.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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