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리츠커상의 영예는 야마모토 리켄에게 주어졌습니다.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심사위원장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언론이 전한 심사평을 보면 야마모토의 작업들 속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경계 흐림과 이를 통한 공동체성의 성취가 주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프리츠커상 심사의 무게추는 2000년쯤부터 건축가의 작품이나 담론 중심에서 건축의 지역성과 공공성으로 서서히 옮겨져왔습니다. 이번 시상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야마모토 리켄은 판교 월든힐스 2단지(2009)와 세곡동 아파트 3단지(2014)를 설계하면서 한국과도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는 여기서도 공동주택의 공용 공간, 공/사의 경계 영역에 주민들이 같이 모여 살고 있다는 인식, 모종의 커뮤니티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곳곳에 넣었고, 이런 시도가 지금까지도 건축계에서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프리츠커상 소식을 놓고 건축계와 언론에 올라오는 말과 글에는 ‘또 일본 건축가’, ‘한국 건축은 언제’ 같은 시기 어린 푸념이 깔려 있습니다. 수상자의 국적만 세보면 일본이 가장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1987년 단게 겐조를 시작으로, 1995년 안도 다다오, 최근 2014년 반 시게루, 2019년 이소자키 아라타 등 37년 동안 아홉 명의 일본 건축가가 이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홉 명의 면면을 보면 세계 건축계의 흐름과 역사 속에서 점하는 위치나 의미가 매우 넓고 다채롭습니다. 상이 시작된 1979년 이후 일본의 건축이 그만큼 세계 건축의 동향과 지형 속에서 꾸준히 발전해왔고 모두가 그것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프리츠커상은 건축가 개인의 영광이니 국가적 과업나 자존심 대결로 여길 일은 아닙니다. 다만, 인류 문화와 환경에 공헌한 건축이라는 것이 한 개인 건축가의 역량만으로 성취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해마다 우리가 안으로 밖으로 쏟는 푸념은 그저 우리 발 앞에 떨어질 뿐입니다. 그동안 쌓인 푸념들이 체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동력으로 전환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커피머신 |
|
|
지역사회권과 마을만들기
“ ‘지역사회권’의 ‘권圈’이라는 글자는 하나의 공간적인 범위를 나타내죠. 즉 ‘지역사회권’은 하나의 커뮤니티가 하나의 장소를 가지고 있는, 장소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커뮤니티입니다. ‘지역사회권’은 단순히 거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경제활동과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뜻하죠. 어린이 양육이나 고령자 요양을 위한 상호부조 시스템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고의 주거 방식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 야마모토 리켄
|
|
|
지역성은 정치적 혹은 문화적 용어이다
“결과적으로 지역성 시도가 오히려 지역민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했습니다. 여기에 건축가와 예술가들도 문화기획의 형태로 많이 가세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는…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름의 지역성을 기반으로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문화 및 생산 활동을 하며 광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마구잡이로 뒤섞여있습니다. 글로벌 논의의 ‘지역’과 지역의 ‘지역’도 마구잡이로 섞여 있습니다. 각종 비엔날레 및 국제행사가 이를 반증합니다.” - 김광수
|
|
|
같은 예산으로 두 배로 크고 밝은 공간
“건축에서의 미적 성취는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근본적인 가치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는 건축가의 의도와 건축물이 위치하는 장소의 특성, 공간의 질적 사용에 대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선택한 것들의 결과물입니다. 프로젝트의 미적인 부분은 그 프로젝트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용 범위, 디자인의 일관성, 각각의 공간들이 주변환경과 갖는 관계의 성격에 의해 정해진다고 봅니다. 때문에 건축은 단순히 미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습니다.” - 라카통 & 바살
|
|
|
박창현, 아파트 문제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몇 년 지나고 나니 입주민 스스로 너무나 달라진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웃 관계부터 시작해서 많은 것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한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이유를 찾아보니 리켄 선생의 설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입주민들은 건축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리켄 선생을 초대해(비행기 표도 마련해주었고)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당신이 설계해 준 건물에 살면서 우리가 이렇게 어울리며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
|
|
김일현, 속물적 담합과 주제 의식의 부족
“마르크스가 논한 바와 같이 노동의 분화는 단지 건축물에 그치지 않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정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장소에 대한 섬세함이 없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신도시를 외국에 수출하는 것을 애국으로 생각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프루이트 이고와 같은 속물적 계획안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겠지만, 결국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파이는 먹어 치운 이후일 테고, 과거를 돌아볼 여유는 이 경우에도 부재할 테니 말이다.” |
|
|
김현섭, 한국의 건축상과 김종성건축상
“1950~70년대의 ‘국전’과 ‘현대건축작가전’에서 알 수 있듯, 그리고 건축가를 ‘작가’로 건축물을 ‘작품’으로 자주 부르는 경우에서 보게 되듯, “건축의 예술성”에 대한 강조는 초기 건축상 제정의 가장 중요한 동인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신설된 상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건축상은 신진건축가 발굴, 공공성, 환경문제, 시공자 존중 등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건축에 대한 인식을 잘 반영한다.”
|
|
|
토대와 방향이 부재한 한국 건축에 묻다
“차라리 레퍼런스 없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글을 써보자는 얘기, 도대체 ‘너의 얘기는 무엇이냐’가 인문학에서 대두됐던 것입니다. 건축에서도 그런 게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한국 건축의 1세대는 외국에서 배우고 온 것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그 다음 세대는 지식을 갖고 와서 우리나라에 맞게 조금 바꾸었습니다. 지금도 서양에서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촉발시켜 만드는 것이 건축가든 학자든 해야 할 역할인데… 학문은 자기가 배운 것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행위를 좀 게을리 한 게 아닌가 합니다.” - 이필훈
|
|
|
재단법인 정림건축문화재단 hello@junglim.org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