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은 포퓰리즘에 취약합니다. 정부가 펼치는 정책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모든 공공건축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제나 정치적 도구이자 표현입니다. 정치는 우리 생활의 일부이고, 공공사업이 다 포퓰리즘의 산물은 아닙니다. 최근 있었던 서리풀 개방형 수장고 설계공모도 미술관과 전시의 시대에 발맞춘 정치의 행보이고, 노들섬에 “글로벌 예술섬”을 새로 그려보는 것이나 ‘민주적 건축’이라는 꿈을 펼쳐보는 것이나 정치적 시도의 서로 다른 양상일 겁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물음표가 생깁니다. 노들섬 재공모는 운영을 시작한 지 2년을 갓 넘긴 시설을 덧씌우는 무리하고 부당한 처사로 보이고, 서리풀 국제 공모는 애초에 그것이 그럴 만한 사업인지, 또 그렇게 필요한 사업인지 의구심도 듭니다. 공모와 심사 과정 일부를 이벤트로 만들어 유튜브로 중계하고, 선정 결과를 뭉뚝하게 요약한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쓴 기사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든 생각은 둘 다 허공에 쏘아 올린 요란한 폭죽 같다는 것입니다. 이 사업들의 부당함, 과도함, 의구심에 대해서는 아무도 나서서 말하지 않고, 시민들도 건축계도 그저 경연 예능 프로의 구경꾼이 되어 있습니다. 공공건축이 포퓰리즘으로 미끄러지느냐 마느냐는 칼날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세금과 사회적 비용, 환경적 부담,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몰고 올 효과를 떠올려보면 더 그렇습니다. 설계 공모(公募)가 부지불식간 공모(共謀)로 전락하는 것도, 공개 포럼과 공개 심사가 여론을 호도하는 선전 도구가 되는 것도 한순간입니다. 그러니 정신을 놓지 않고 밝은 눈과 귀로 예민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을 찾고 시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목소리들의 진위를, 어떤 여론을 등에 업은 정책들의 공정성과 보편성의 함량을 말이죠. 🤖커피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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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훈, 「서울시 신청사의 굴곡 혹은 굴욕」
“현상설계로 진행하면 예상 공사비를 넘기게 될 수도 있는 한편, 행정 소요기간이 길어져 임기 내에 대형치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정치가와 행정수장들의 욕망을 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0억에 가까운 예상 공사비와 시청이란 상징성으로 인해 턴키에 참여한 업체 간의 과당경쟁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 제출을 마친 건설사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마감시간을 조금 넘어 제출한 안을 탈락시키는, 전쟁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신청사 건립 반대 운동을 한 몇몇 소수의 건축가 외에는 이런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축집단이 없었다는 것은 건축계의 처량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비단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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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지역의 역사와 장소성을 기억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바라며」
“2006년 오세훈 전 시장이 취임 후 동대문 운동장 공원화 사업은 랜드마크 건물 건설로 방향이 선회된다. 시장 취임 후 1~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결정되었고, 그 와중에 예산은 초기 900억 원에서 4배 이상 증가된 3,700억 원으로 급증하였다.”
“건축 면적 기준으로 63빌딩 1/4에 해당하는 육중한 DDP 건물 내부에 들어설 구체적 기능은 확립되지 않았다. DDP 탄생의 과정을 보면서 우리가 되짚어 보아야 할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과연 DDP에 적합한 기능이 무엇인가? 둘째, 무엇이 진정한 랜드마크이고 지역의 아이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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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기, 「민주주의 공동체를 다시 생각하기: 갈등적 공공성과 재귀적 대표성」
“민주주의의 증오는 민주주의의 민주적 배제가 결코 순수한 외부, 혹은 현실의 적으로의 치환으로 귀결될 수 없다는 점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그 증오의 대상이 민주주의 자체이며, 다시 랑시에르 본인의 말을 빌리면 인민 자신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사이에 존재하는 … 피에르 로장발롱의 용어를 빌면 “인민의 세 번째 신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시대이자 동시에 포퓰리즘의 시대인 21세기의 민주적 공동체를 다시 생각하려는 사람들이 직면한 본질적인 도전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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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한, 「서울역 고가 공원화,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논란과 우려를 뒤로 한 채 ‘서울역 고가 공원화 프로젝트’가 그대로 강행될 모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9월 23일, 뉴욕의 하이라인을 시찰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서울역 고가를 서울식 하이라인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 프로젝트는 많은 시민과 전문가들이 “왜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며 그 목적과 당위성에 동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빛의 속도로 직진하고 있다. 소통과 과정과 참여를 중시해 온 박원순 시장답지 않은, 전형적인 전시 사업이라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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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 「쇼핑몰, 테마파크가 아닌 다른 곳」
“우리는 날마다 ‘자유라는 감옥’을 활보하고 다닌다. 도시는 금융자본주의에 의해 철저히 포위되었다. ‘상업화, 상품화, 소비주의, 그리고 디즈니화 프로세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최신 동향이다. 우리가 지나간 곳은 쇼핑몰로 변해간다.”
“문화적인 것에 대한 공론장에서 ‘테마파크와 관광’은 어느새 가장 중요한 핵심어로 떠올랐다. 문화적인 것은 테마파크적인 것으로 등질화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테마파크의 논리 안으로 문학과 여타 예술들을 끌어들이는 데 급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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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한 × 정기황, 「경의선 공유지의 실험」
“수많은 정책 입안자들은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역의 어려운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포퓰리즘으로 이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계몽주의자 입장인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자는 이를 도구화한다는 것에서 위험하고, 후자는 지역 현실과 현장에 무지하고 관념적인 접근이라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정리해 보면, 경의선 공유지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역세권 개발은 … 모든 시민과 지역이 누려야 할 ‘도시의 권리’를 대자본에 팔아넘기는 행위라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또한 공원계획은 경의선에 면해 있는 각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관 주도의 토건사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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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난민,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어」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어 이 개혁주의 노선은 의미를 잃었다. 공공성의 원칙 그 자체는 가면 갈수록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고 있으며, 개혁 좌파에게 남은 역할이란 그나마 복지 후퇴라도 막아주고 노동 관련 법 개악에 맞서는, 극히 제한적이며 수세적인 역할일 뿐이다. 그런 역할을 수행하면서 큰 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사실상 백기투항한 좌파는, 일부 조직노동의 지지야 여전히 받아도 미조직 불안 노동자나 젊은 시대의 노동예비군에게 무용지물이 됐다. … 주류 좌파세력은 이미 신자유주의 체제에 너무나 깊이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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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공공의 사막에서 당선작 경로 찾기」
“공공 프로젝트의 존재 이유는 사회 불균형을 해소하고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의 가치를 한발 앞서 선취하는 데 있다. 공익과 공공성을 담보로 추진되고, 필수불가결하지만 이윤을 내기 어려운 취약 지대를 커버하고, 당장의 필요뿐 아니라 미래의 필요까지 수용하는 중요한 사회적 수단이자 문화적 생성물이다.”
“공공 프로젝트에서 결정적 한 방은 개념과 실제의 간극을 좁히며 총체적 난국을 풀어나가는 주인이 없다는 점이다. 주인은 없는데 어떻게 애초에 프로젝트가 생성된단 말인가? 생각하는 주인은 없으나 프로젝트를 생성하는 요인은 있기 때문이다. 섬뜩하기까지 한 이 말은 어떤 기시감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 공공 프로젝트의 모든 어려움이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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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정림건축문화재단 hello@jungli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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