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팎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 <보더리스 사이트>전 정림건축문화재단이 기획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보더리스 사이트>전이 3월 17일 문을 열었습니다. 이 전시는 현지 답사와 지역 연구를 바탕으로 신의주-단둥의 경계와 경계 없음을 주제로 합니다. 여느 전시장이 아니라 지역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철로가 놓였던 구 서울역사에서의 전시라는 점도 그래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국경을 넘나든 흔적과 함께 서로의 문화와 시간이 혼재된 신의주-단둥을 '사이트'로 삼아 이율배반적으로 복잡하게 뒤얽힌 접경 지역의 다양한 모습을 예술작품으로 전합니다. 우리 시대 경계의 의미가 단절이 아닌 연결의 의미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전시 관람 안내
전시를 만든 사람들
![]() 김보용, <반도투어>, 2020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지 이제 막 30년이 된 대한민국은 ‘한반도’라는 말이 무색한 반쪽짜리 섬나라다. 현대 기술을 빌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 게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오늘날, 우리가 건너지 못하는 어떤 곳을 지나치는 하이퍼링크의 세계를 경험해본다. ![]() 김황, <우리는 제자리를 걸었네>, 2021 ‘디자인 프로브’ 방법론을 활용한 워크숍 형태의 작업이다. 사회 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미시 경계들에 주목한다. 배우와 관객은 공통으로 주어진 디자인 문제를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동일화되어가는 동시에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경계를 마주한다. ![]() BARE, <보더 인 모션> 2021 3등 대합실의 움직이는 트랙은 187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의 궤적을 따라 이동한다. 트랙은 각 도시의 역사적 사건과
개인들의 장면을 반영한다. 트랙 위에 놓인 원판 속 이미지는 시간의
흐름과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고, 거시적 흐름 속에서 중첩되는 미시적 장면들은 견고해 보이는 경계가 조건에 따라 일시적으로 흐려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 맛깔손, <REWIND FORWARD>, 2021 구글 스트리트뷰를 통해 단둥과 신의주 일대를 ‘관광’하면서 느낀 비대면-감각을 카세트테이프라는 물리적 매체로 전달한다. 신의주와
단둥 사이에 있는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압록강을 멍하게 바라보며 시작된 감상은 모니터 위 지도를 가로지르는 행위로 나아가는데, 이것이 ‘되감기-앞으로 가기’라는 카세트플레이어의 단순한 작동방식과 닮았음을 깨닫는다. ![]() 코우너스, <즐거운 여행하세요>, 2021 직접 방문했던 단둥의 거리에서 본 여러 가지 심상을 담아, 본 전시의 관람객을 자유 관광 여행자로 설정해본다. 남한 여권을 가진 사람은 건널 수 없는 지금의 형편을 넘어서는 상상력으로, 단둥에서 북한으로 가는 여행자에게 여행 필수품인 휴대용 티슈를 증정한다. ![]() 전소정, <이클립스Ⅰ,Ⅱ>, 2020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남북 관계에 비유한 윤이상의
<더블 콘체르토>에서 출발하여 분단과 경계의 경험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감각들에 대해 질문한다. 은하수의 거리
만큼이나 아득하고 막연한 둘 사이의 관계와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적, 물리적인 경계들을 가시화한다. ![]() 김주리, <모습(某濕)>, 2020 단둥 인근 압록강 하구의 습지를 답사한 경험에서 비롯된 이 설치작품은
호명할 수 없는 형상(모습)과 그것의 젖은 상태(某濕), 생명을 환기하는
물기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게워낸
듯한 ‘모습(某濕)’은 어떠한 덩어리나 풍경으로 읽힐 수도 있고 ‘기억’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 김태동, <On The River>, 2021 압록강 위에서 촬영한 수많은 사진들의 재조합이다. 압록강 위에서 빠르게 포착한 ‘저쪽’의 사진에는 빨래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탄 아저씨, 낚시하는 사람들, 반짝이는 압록강의 윤슬, 그리고 공장들이 곳곳에 분포한 작은 도시의 평범한 풍경만이 가득하다. ![]() 정소영, <이미륵의 거울>, 2021 팬데믹 이후 더욱 강화된 경계와 멀어진 거리감이 어떻게 기억을 재구성하는지를 조형적으로 살피며, 거울이 되어 빛으로 변화한 물의 흔적을 좇는다. 20세기의 이미륵과 21세기의 나 사이에 흐르는
압록강의 시간을 거울, 유리, 물 등 실재하는 물질 속에 담은 작품이 전
시장의 현재를 다시 비추면서 그 둘 사이를 연결한다. ![]() 라오미, <끝없는 환희를 그대에게>, 2020-21 작가는 이미지를 화면 위에 옮기는 작업을 ‘번안’의
행위로 인식하고, 번안되기 전의 원형을 찾아가는 탐색 과정을 현재의 시간성과 연결시킨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단둥은 해항도시이자 개항도시로서 근대 문화의 유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연안(沿岸)이다. ![]() 신제현, <회전하는 경계>, 2021 작가는 압록강 건너 보이는 일명 ‘태양 호텔’을 미니어처로 재현하여 원
형 구조물을 만들었다. 이 구조물과 두 개의 실시간 영상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남한과 북한 사이 경계에 대한 허상과 실체를 노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인지 부조화를 불러일으킨다. ![]() 황호빈, <튜브맨 어드벤쳐>, 2021 개인과 집단, 자아와 타자 사이의 경계와 관계에 대
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현실적 삶이 투영된 자전적 작품이다. 게
임 형태로 제작된 작품은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통해 관객의 판단과 선택을 작품에 포함시킨다. ![]() 최윤, <탈출 판타지아>, 2021 남한과 북한에서 발생하는 탈출을 향한 판타지에 대
한 작업이다. 영상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배를 타고 압록강을 따라 이동
하며 북한 지역을 바라보는데, 카메라로 줌만 가능할 뿐 그곳에
결코 발을 디디지 못한다. 그러나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들려주
는 이야기는 다르다. ![]() 이원호, <모씨(某氏) 이야기>, 2021 단둥이 오랜 역사 동안 교류가 이루어지며 다양하고 복잡한 층위들이 뒤섞인 경계 지역이라면, 탑골공원 뒤 광장은 세대, 빈부, 이데올로기 간
여러 경계들이 중첩되며 서로 다름이 비산되고 혼재된 장소다. <모씨 이야기>는 단둥에서 20여 년 간 한인회장을 해온 모씨가 탑골
공원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 이해반, <압록강에서>, 2021 작가는 압록강에서 중국 국기를 매단 배 위에 놓인 관광객 대여용 망원경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행위에서부터 강원도 고성 DMZ 전망대에서
대형 군사용 망원경을 통해 금강산을 바라보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관찰하기 바빴던 시간을 떠올린다.
이는 마치 작업실에서 누드모델을 섭외해 벌거벗은 대상을 관찰하고 크로키 하던 창작 과정과 흡사하다. ![]() 임동우, <복수 간판>, 2021 중국인, 북한인, 한국인, 북한 화교 등이 뒤섞여 살아가는 경계 도시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조선어와 한글이다.
각종 간판에 중국어와 혼재되어 쓰이는 한글과 조선어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언어로 다가온다. 혼종적이고 융합된 문화의 상징물처럼 보이는 한글 간판을 통해 낯선 경계의 새로운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 서현석, <안개 1, 2>, 2021, 단둥과 신의주를 가르는 경계선 역시 유연하다고 인식하고, ‘경계’의 모순적 양면성을 탐구한 <안개 1>, <안개 2>를 선보인다. ‘광학적
월경’은 관광 상품이 되어 있고,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은 국경 너머의
위치를 나타내기 일쑤인 오늘날, 여전히 관습이 묘연한 경계를 규범화하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이주용, <장소, 사물의 기념비>, 2019 두만강과 압록강의 북중 접경 지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조선인 집단 이주 마을의 장소 정체성이 어떤 방식으로 교란되는지를 주목해보기도, 선전용으로 만들어진 도시에 대한 직관적인 시선을 담기도 하였다. (리서치) 경계도시, 신의주와 단동 그리고 압록강 오랜기간 남북한 건축 연구를 진행한 경기대학교 안창모 교수의 리서치 연구자료를 통해 해당 지역에 대한 과거와 현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섹션이다. 재단법인 정림건축문화재단 hello@junglim.org |
정림건축문화재단과 건축신문 소식을 정기적으로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