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무엇일 수 있는가?”를 묻는 『미로』 5호가 출간되었습니다. 건축의 본질과 정의를 묻는 질문 “건축은 무엇인가?” 대신, ‘건축’이란 단어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일을 모아 건축은 무엇일 수 있는지 질문해보고자 했습니다. 지식과 기술, 환경과 자본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금, 건축의 영역, 가능성, 경계를 다양한 각도로 살펴보자는 기획이지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AI와 그것이 재편할 시장,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소규모 현장, 학문과 직능의 밑바탕을 이루는 지식, 인접 분야와의 관계 등등 19편의 글이 각기 다른 실천과 모색을 다루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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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연계 포럼도 준비 중입니다. 세 번의 자리를 추진 중에 있는데, 러프한 초안은 이렇습니다. 하나는, ‘나에게 건축이란’이라는 느슨한 테두리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내가 추구하는 건축이 무엇인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다음으로 ‘그것이 무엇이든, 소통 가능해야’라는 슬로건 아래 각자가 생각하는 건축의 ‘조건’을 자유롭게 토론해보려고 합니다. 또 하나는, ‘건축이라는 넓고 깊은 세계’라는 다소 까마득한 제목 아래서 건축이라는 세계를 좀 더 진지하게 탐구해보려고 합니다. 책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혹은 거기에 얽매일 필요 없이, 글에 압축된 것을 풀어놓기도 하고, 못 다 쓴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하고, 그사이에 벌써 갱신된 생각이 있다면 덮어쓰기도 하면서, ‘건축이 무엇일 수 있을지’ 여러 생각과 말을 이리저리 더 휘젓고 뭉쳐보려는 기획입니다. 자유롭게, 신나게, 마음껏. 성사되는 것부터 오픈하면서 소식 전하겠습니다.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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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현 / 『미로 5: 건축은 무엇일 수 있는가?』를 엮으며
→ 배형민 / 건축은 기율이다 → 정해욱 / 건축은 무엇일 수 있는가 (그런데 기율을 곁들인) → 양수인 / 기술보다 기술이다 → 이신후 / 시장에 물어라, 건축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 김선주 / 산 옮기기, 혹은 바깥 없는 세계에서 건축하기 → 허성범 / “그 점에 대해 나쁘게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 박세진 / 건축은 매체의 흔적을 디자인하는 것임을 → 김원일 / 슈뢰딩거의 공사장 → 전중섭 / 대문 개방 → 이지형 / 왼쪽 원에는 시계 오른쪽 원에는 건축 → 변건우 / 건축학과 졸업생은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 염상훈 / 설계 스튜디오는 연구가 될 수 있는가 → 박천강 / - 건축 - 지식 - 판단 - 건축 - → 송률, 크리스티안 슈바이처 / 공기청정 스프레이로 모든 걸 날려버리세요 - 사회비평으로서의 건축에 관하여 → 오피엠 / 모든 것은 건축이다 2.0 → 여재원, 강신 /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 상자와 내부 그리고 필드 → 김사라 / 글과 사고의 시체를 찾아서 → 이지회 / 건축이라는 파편들이 움직일 때 → 심미선 / 다시 만난 세계: 글로 잇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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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무엇일 수 있는가?’ 이것은 역사, 장소, 입장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건축을 전제하는 질문이다. 반면 자주 듣는 “건축은 무엇인가?”는 질문이기보다 변하지 않는 건축의 규범을 정의하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지난 40여 년 건축의 연구자로 나는 전자의 열린 질문에 대응해왔고 후자의 원리주의를 거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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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이 오락 방송을 점령했음에도 코미디라는 이름으로 수렴되지 않듯, 혹시 건축에서도 직능으로부터 유리된 기율이 어딘가 잔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남겨진 기율은 건축(혹은 건축가)의 이해관계를 직능과 다르게 조직할 가능성을 내포할 것이다. |
→ 정해욱, 「건축은 무엇일 수 있는가 (그런데 기율을 곁들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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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핵심 능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가 점검과 소통 능력 두 가지라고 답하겠다. 이 둘은 건축가에게 필요한 여러 능력 가운데 하나라기보다, 다른 모든 능력의 바탕이 되는 코어 근육에 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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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축이 시장이라는 현대의 전쟁에 다시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난센스들을, 폐쇄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를 폐기해야 한다. 건축의 업무 행태를 다시 날카롭게 벼리고, 사업적으로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해야 한다. |
→ 이신후, 「시장에 물어라, 건축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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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로 지금 이곳 다소 폐허가 된 행성 표면 위에서, 과거로의 복원이나 기술적 구원에 대한 서사 없이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세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
→ 김선주, 「산 옮기기, 혹은 바깥 없는 세계에서 건축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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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숭고한 자연의 유령을 쫓는 대신, 우리가 만든 인공의 숲 안에서 현실을 구축하는 벽을 세우고 어디까지가 그 경계인지 결정할 뿐이다. 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내부화된 조건 속에서 외부는 사라지고, 건축은 스케일이라는 거리 감각을 통해 스스로 실존을 증명한다. |
→ 허성범, 「“그 점에 대해 나쁘게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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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기 위해 기술을 더욱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모든 매체가 기술을 거쳐야만 존재할 수 있다면, 기술에 의미를 얹고 매체의 흔적을 승화해내기 위해, 기술의 작동방식을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
→ 박세진, 「건축은 매체의 흔적을 디자인하는 것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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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도면이나 사진보다 더 입체적으로 작업을 복기하게 해주는 것도 사실 이 영수증들로 엮인 공사비 내역이다. 다음 프로젝트의 견적을 위해 지난 실행 내역을 뒤적이다 보면, 벌써 한참 전에 지나간 하루하루의 건축 생활이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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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큰 흐름 또한 물질보다 정보적 연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향할 것이다. 다만 한편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생동을 위해, 여전히 건축이 서울대공원 산책로의 일몰이나 아시시의 오래된 성당에 울렸던 그레고리오 성가, 이륙 전의 비행기, 볼로냐의 대문 같은 것이 될 구실이 없는지 찾는 일을 지속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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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현실이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내린 후 그것에 발맞추려는 노력이 아니라, 이질적이고 모순적이며 양립 불가능한 현실에 직접 개입하고, 건축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가능성을 해방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얻어낸 것을 담론을 통해 타자들에게 투명하게 개방하는 일이다. |
→ 이지형, 「왼쪽 원에는 시계 오른쪽 원에는 건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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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트렌드로 둔갑한 이 공기 같은 허무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제가 근래 하고 있는 고민입니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막연하고 막막한 과제이지요. 하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냉소에 머문다면, 바뀌는 건 결코 없겠죠. 이 문제의식이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정초가 될지, 대책 없는 불만이 될지는 앞으로에 달렸습니다. |
→ 변건우, 「건축학과 졸업생은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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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통한’ 연구가 건축 분야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 다양한 설계의 시도와 실험을 통해 배움과 지식이 생성되는 장소로서 스튜디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결국, 건축설계 분야에서는 교육과 연구의 관계가 굉장히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를 분리하는 것은 건축 분야의 확장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 염상훈, 「설계 스튜디오는 연구가 될 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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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에서는 비슷한 질문이 주기적으로 되돌아오는데, 문제는 그 반복이 수정과 변형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질문은 되풀이되지만 매번 처음인 것처럼 제기되며, 그것을 다루는 근거, 반례, 수정은 쌓이지 않는다. 그 결과, 반복은 깊이로 내려가지 못하고 표면을 맴돈다. |
→ 박천강, 「- 건축 - 지식 - 판단 - 건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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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으로서의 건축은 우리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향한다. 우리는 공정한 미래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공간적 환경을 의도를 갖고 형성해야 할 것이다. 건축이 이를 위한 변환 촉매제로 역할하길 바란다. |
→ 송률, 크리스티안 슈바이처, 「공기청정 스프레이로 모든 걸 날려버리세요 - 사회비평으로서의 건축에 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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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고유함은 산업과 예술 사이의 긴장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재구성할 수 있는 유연함 자체에 있다. 그렇다. 건축은 박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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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건축가가 스스로 끊임없이 말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야 하며, 사물에 최대한 가까이 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이 글은 비평이라기보다 묘사여야 한다. 사물을 눈앞에 두고서 이야기해야 한다. 건축가는 관찰자로서 존재한다. |
→ 여재원, 강신,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 상자와 내부 그리고 필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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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풍화에 견디는 물질적 존재에 머무르지 않고, 형상이 바뀌거나 사라진 이후에도 인간의 인식 체계 속에 존속하는 건축. 물질의 지속이 아닌 사유의 지속이 남겨야 할 유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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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결과물을 생산하는 행위보다는 그 결과물을 가능하게 하는 전후의 과정을 포함하는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된다. ‘건축을 한다’는 것은 이렇듯 단일한 행위가 아니라, 우회하고 연결하며 난잡해지는 과정이다. |
→ 이지회, 「건축이라는 파편들이 움직일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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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종이와 연필을 꺼내라. PC를 켜라. 휴대폰 메모 앱을 열어라. 건축을 쓰고, 읽고, 대화를 시작하자. |
→ 심미선, 「다시 만난 세계: 글로 잇는 건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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