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삶것에서 의미심장한 프레젠테이션 자리를 열었습니다. ‘말(로)하는 건축가’라는 재밌는 부제를 붙인, 인공지능 건축설계 실험의 과정과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였습니다. 실험의 방법이자 목표를 한줄요약하면 ‘마우스 입력 없이 자연어 소통으로만 설계를 진행하는 것’이었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건축 컴퓨테이션이 무엇인지, 앞으로의 건축설계는 어떻게 달라질지를 건축의 보편적 산출물을 통해 보여줬습니다. 이어진 토론 속에는 새로운 가능성의 출현을 환영하는 박수소리, 미지의 변화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 신기한 기술의 작동방식을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질문이 뒤섞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삶것이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디지털 전환의 맨 뒷줄에 멈춰 있는 건축을 한 걸음 앞으로 내딛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시도는 이전의 건축가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설명하지 못했던(않았던) 것을 설명하게 해줄 겁니다. 조금 과장하면, ‘건축의 언어’와 ‘자신만의 건축 어휘’라는 것이 정보화되고 구조화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
|
인공지능의 잠재 성능은 입력된 과거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과거 총합의 크기가 너무 거대하기에 인공지능의 힘이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과거는 수많은 ‘현재였던 것’의 누적이고, 인공지능은 지금 막 일어나고 있는 현실엔 직접 닿을 수 없습니다. 60억 인간의 온갖 입력 활동이 인공지능에 피드를 먹여주기 때문에 과거의 최말단(방금 전까지 현재였던 곳)에서 초고속 업데이트가 계속 일어날 뿐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입력 활동 앞단에는 리얼 월드가 쉴 새 없이 생성되고 있습니다. 마치 우주처럼 말이죠. 인공지능 입장에선 리얼 월드의 속도는 빛의 속도나 다름없습니다. 인공지능의 연산 속도가 아무리 빨라져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실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주 전체의 현재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요. 우리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두려워하고 경이로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연결하는 통신망이자 정보처리장치기 때문이고, 현실세계를 가상세계에 인식시키는 인터프리터이자 가상세계를 현실세계에 구현하는 제너레이터기 때문입니다. 🤖커피머신
|
|
|
정림학생건축상 2025는 심사위원 양수인 삶것 대표, 이상윤 연세대학교 교수와 함께 ‘고고학자와 발명가’를 주제로 삼아 예비 건축가들이 졸업 이후 직면할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방법론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했습니다. 단일 건물의 개별적인 리모델링 해법 찾기를 넘어서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건물과 그 건물 유형을 둘러싼 사회, 문화, 역사, 법리로부터 숨겨진 가능성을 발굴해 분석하고, 보편적인 전형으로서 건축적 발명품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
|
|
공모전에는 총 417팀이 참가 신청했고, 이들은 다세대다가구 주택, 학교, 주유소, 목욕탕, 종교시설, 반지하 등 익숙한 건축 유형을 다루었으며, 사이 공간, 이격거리, 덧대기 등 법제 해석이나 생활 속 지혜에서 발견한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했습니다. 이로부터 건축적으로 개입하여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공동체, 지역사회, 도시환경을 새로이 만드는 해법을 모색했습니다. 또한, 매뉴얼(상품화), 법제화, 특허 가능성까지 제시하며 리모델링이 단순한 물리적 변형을 넘어 사회적 해결책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
|
|
올해 정림학생건축상 주제는 공사비 폭등과 같은 현실적인 조건과, 기후 변화와 생태 위기 등 환경 이슈와 맞닿아 있는 현안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연계 포럼을 열어 삶것, 제로투엔(임지환), 노말(최민욱, 조세연, 이복기)과 이상윤 교수님이 리모델링 현장과 현실, 그리고 리모델링 교육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
|
|
이 책에 정림학생건축상 2025 대상, 입선, 특별상 등을 수상한 15개 팀 작업을 비롯하여 기획의 글, 심사위원 주제 설명과 심사평, 연계 포럼 기록 등을 실었습니다. 리모델링은 건축계에서 계속 탐구해야 할 주요 영역입니다. 이 책이 앞으로 이어질 논의의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
|
|
- 참여자: 김상호, 양수인, 이복기, 이상윤, 임지환, 조세연, 최민욱
- 수상자: 김희진 등 42명
- 편집: 심미선
- 기획: 정림건축문화재단
- 발행: 2025년 9월 8일
|
|
|
서문
정림학생건축상 2025 ‘고고학자와 발명가’
수상작 - 대상
📌 입선 수상작을 비롯한 자세한 정보는 책에서 만나보세요. |
|
|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
- 김상호
“지금까지 건축 산업에서 콘텐츠는 잘 지어진 건물뿐이었다. 건축문화 산업도 건물을 소스 삼아 파생 상품을 만들어냈다. 본격적인 21세기, 모든 것이 다음 단계,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건축 산업은 오래되고 고착된, 심지어 거의 유일한 생산품인 건물을 넘어서는 뭔가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영역들이 서로가 서로를 고도화, 분산, 재편, 합성, 통합하는 복잡한 틈바구니에서 건축은 고립되거나 흡수될 것이다. 이것이 건축 혹은 건축 산업의 현 위치다.”
"양수인에게 SOS를 보내면서, 내심 원래 목적지[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다다를 수 있는 길을 계속 찾아보고 싶었다. [...] 그런데. “정림학생건축상의 전통을 생각해봤을 때, 내가 심사위원으로 적합할지 스스로 의문이 든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인가."
|
|
|
건물 다시 쓰기: 발굴, 발명하는 건축가
- 최민욱, 조세연, 이복기, 양수인, 임지환 × 이상윤
“앞으로 다수의 건축사무소가 일종의 ‘건축 병원’으로 기능하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리모델링 작업은 사람이 골절이나 외상을 입었을 때 가는 정형외과나 성형외과를 찾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병원’이라는 키워드만 더해도 건축사무소의 개념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이상윤
"개복수술처럼 굉장히 침투적으로, 공격적으로 하는 수술이 침습 수술인데, 저는 그런 게 재미있습니다. 무언가를 개선하기 위해서 리모델링하는 거니까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공격적으로 작업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기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이 도대체 왜 이렇게 했을까를 파악하려고 꽤 열심히 노력하는 편이에요. [...] 리모델링할 때도 기존 건물을 깊이 이해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하면 할수록 설계가 결국 태도의 문제같이 느껴져요. 주어진 조건에 이상한 부분이 있어도 이상하다고 치부하기보다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양수인
"내구연한이 길수록 설계 단계에서 더 많이 고민하고, 다음에 건드리지 않아도 계속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깨닫고 나서는 리모델링뿐만 아니라 신축할 때도 다음에 손볼 사람이 기존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뼈대를 최대한 간결하게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 임지환
"저희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은 기존 건물을 맹목적으로 존치하거나 존중하는 방향은 지양하고 그 건물이 갖고 있는 특성을 잘 이해하는 겁니다. 그랬을 때 더 장기적으로 건물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작업으로 이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 이복기
"[주막 프로젝트 기존 건물이] 바깥의 구조는 실질적으로 구조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거든요. [...] 구조의 흔적이라도 남기자고 결론 내렸습니다. 집을 완전히 밀고 다시 짓는 게 아니라, 외관이 꼭 기능적인 면이 없더라도 남겨둠으로써 마을 사람들이 늘 봐왔던 그 집의 기억을 어느 정도 이어가는 감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조세연
"저희도 주차장법처럼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지만, 법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것이고 저희가 법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법의 취지를 존중합니다. “법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를 따져보면 다 의미가 있어서 만들어진 거니까요. [...] 그 안에서 우리가 사회나 건축주에게 이롭게 법을 해석하는 것이 저희의 접근 방식입니다." - 최민욱
|
|
|
재단법인 정림건축문화재단 hello@junglim.org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