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신문'이 웹 전환에 이어 뉴스레터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첫 소식은 웹으로 출판된 첫 책, 『건물의 수명 연장』의 미리보기로 꾸렸습니다. 너무 긴 이메일이 되지 않게 몇 개 챕터의 본문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했습니다. 모든 글의 전문은 웹페이지에서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건축신문' 뉴스레터는 앞으로 신간 미리보기, 지난 출판물 다시읽기, 건축계 최근 이슈 등을 번갈아 가며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매월 중순 즈음에 1회 발행됩니다. 리모델링 이정표 / 윤솔희 모든 공사가 끝난 뒤에야 건물을 만나는 편집자이기에 그 탄생의 순간을 알 길이 없다. 다만 상상할 뿐이다. 건축가와 클라이언트가 만나 어떤 인사로 대화를 시작할까, 클라이언트는 어떤 단어로 자신의 꿈을 설명할까. “요즘 사람들은 뭘 좋아하나요?” “요즘 거기가 유명하던데 그곳과 비슷하되 더욱 멋진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또는 사진을 빼곡하게 담아 놓은 폴더를 열어 보이며 “저는 이런, 이런 모습의 건물을 짓고 싶은데 어떨까요?”라고 운을 떼지 않을까.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라는 격언처럼 둘은 마주 앉아 먼저 사회를, 오늘의 트렌드를 논하리라. 한 가지는 명확하다. 요즘은 화두는 리모델링이겠다. 서울의 성수, 망원, 합정, 연남 등 뜨는 동네에 리모델링한 건물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실제로 증・개축 및 이전・대수선 사례가 증가 추세다. 세움터 건축인허가 현황에 따르면 2020년의 증・개축 및 이전・대수선 사례는 연면적 기준으로 2012년 대비 48% 증가했다. 동수 기준으로도 19% 늘었다. 클라이언트의 첫 질문도 바뀌겠다. “요즘 리모델링이 인기라던데요, 소장님. 왜 그런 거예요? 저희도 리모델링해야 할까요?” 질문을 받은 이도 궁금하긴 매한가지일 테다. 신축보다 시공 기간이 짧고 시공비도 적고 기존 용적률 때문에 수익성이 좋다지만 그게 정말 다일까. 그 조건만으로 동네 하나가 통째로 리모델링되는 듯한 오늘의 모습을 설명하기에는 어쩐지 헛헛하다. 그리고 마냥 시공 기간이 짧고 시공비가 적은 것도 아닐 것이다. 모처럼 찾아온 관심에 제대로 올라타려면 우선 그 본질을 알아야 하겠다... 르 코르뷔지에의 메종 구에뜨 일화로 보는 수명 연장 / 조민석 ‘건물의 수명 연장’과 관련해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겠다. 벨기에의 앤 드묄르미스터(Ann Demeulemeester)라는 훌륭한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2007년 서울에 이 분의 건물을 설계할 기회가 있어 그 계기로 앤 드묄르미스터와 그의 남편이자 예술적 동반자 패트릭 로빈(Patrick Robyn)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들은 르 코르뷔지에가 벨기에에 남긴 유일한 건축물인 메종 구에뜨에 사는 분들로 유명해 그 전부터 알고 있긴 했다... ...패트릭 로빈에게 어떻게 르 코르뷔지에의 집에서 살게 되었냐고 물었다. 패트릭 로빈과 앤 드묄르미스터는 고등학생 때 만나 이후 결혼한 사이인데, 20대 초반의 대학생 때 동네에 까만 슬레이트 형태의 돌로 덮인 상자형 집이 있길래 왠지 호기심이 들어 초인종을 눌렀다고 한다. 연세가 지긋한 여성 한 분이 문을 열었고 이들이 집을 구경해도 되냐고 물으니 선뜻 허락해주었다고 한다. 그녀가 말하길 화가였던 자신의 아버지가 지은 집이고 아버지가 작고한 후 물려 받아 혼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르 코르뷔지에의 클라이언트였던 것이다. 집 구경을 마친 다음 패트릭이 당돌하게 “이 집을 살 수 있냐”고 물으니 그녀는 웃으면서 “지금은 팔 생각이 전혀 없지만 언젠가 팔 계획이 있으면 연락주겠다.”고 말했고, 이에 패트릭은 연락처를 남기고 왔다고 한다.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패트릭에게 연락이 왔다. 직장 은퇴 후 남쪽 따뜻한 곳으로 이주하려고 하기에 집을 팔 생각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패트릭이 얼마 정도에 팔 생각이냐고 물으니 20대 후반인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말했다고 한다. 아쉬움에 시무룩해진 패트릭을 보고는 아버지가 무슨 일인지 물었고, 자초지종을 들은 양가 부모님과 조부모님들이 차례로 조금씩 돈을 꿔 주셔서 패트릭은 그녀가 제시한 금액의 ¼ 정도를 모을 수 있었다. 여전히 턱없는 금액이었다. 다시 집에 찾아가 마련할 수 있는 최선이 이 금액이라고 이야기하니 그녀가 뜻밖에도 ‘그래요. 이제 당신 겁니다!(Okay, It’s yours!)’라며 집을 팔았다고 한다... ...1987년 르 코르뷔지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정부에서 복원 금액의 90% 이상을 지원해줘서 이 집은 전체적인 복원 작업을 했다. 덕분에 부부는 전문가 수준으로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원본의 단판 유리를 당시 법규상 요구되는 복층 유리로 교체하면서 둔탁하게 보이지 않게 하는 방식이라든지, 페인트 색도 일일이 공부해서 준공 당시 1930년대 제조법으로 만든 색을 냈다.
원 주인은 왜 헐값에 이들에게 집을 팔았을까?... 보존과 재생이라는 흐름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서구 ...리모델링 설계에서는 기존 공간의 환경이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건축가가 어떤 기능을 설계할 때 본인의 경험 데이터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동굴’은 이미 그걸 뛰어넘어 존재하고 있으니까, 건축가가 그 환경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디자인적으로 감성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질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믿은 것이다... 때로 묵은지가 필요한 요리가 있듯이 리모델링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최재원 ...이제 대중은 사소한 것에도 가치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성수동에 있는 여러 리모델링 건축물이 인기를 끄는 현상을 보면 (향수를 자극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늘 주변에 있던 것을 새로운 이야기로 향유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건물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어나가는 노력이 중요해 보인다. 이때 건축가는 건축 설계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부분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김찬중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고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며 건축적 경향도 움직이고 있다. 건축가 입장에서 보면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양분되는 느낌이다. 한쪽은 일반적인 것을 원하고, 다른 한쪽은 독특한 것을 원한다. 콘텐츠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사용자로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마치 스위스 나이프 같은 만능의 공간을 원하거나 무작정 특별한 것을 주문한다는 말이다. 자체 콘텐츠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른 차이일 수도 있다... 우대성 인구가 성장을 멈추고 내리막길에 있다. 가톨릭 교구도 성직자 수가 감소하는 상황이다. 국내에선 아파트 단지 근처 말고는 최근 5~6년 이내에 새로 지어진 성당이 몇 곳 없고, 유럽과 미국에서는 성당이 부동산 매물로 나온다고 한다. ‘만약 수도회에 들어오는 인구가 더는 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톨릭계도 이 문제에 봉착해 있다... 김광수 과거에는 산업시설 리모델링을 그 자체의 특징이나 분위기가 좋아서 결정하기보다는 예산이 적어서 차선으로 선택하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이유에서도 리모델링을 선택하고 있다. 산업시설 리모델링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도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있음을 느낀다... 최춘웅 산업시설 리모델링은 다른 리모델링과는 조금 다른 층위의 문제로 보인다. 이번 포럼에서는 ‘건물의 수명 연장’이라며 건축물 자체를 인체화하는 시도를 보여줬는데, 생각해보면 산업시설은 너무 규모가 커서 그야말로 인체화해본 적 없던,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배경화된 건물에 가깝다. 오히려 생태 환경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만물에는 저마다 타고난 수명이 있듯이 건축물 또한 자연적으로 퇴화하게 놔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양수인 건물에 대해서 건축가가 산파 역할을 한다고 보면, 파괴공학 전문가는 건물이 웰-다잉할 수 있도록 돕는 장의사 역할을 하는 셈이겠다. 앞으로는 한 번의 파괴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부서지고, 약간씩 없어지고, 점차 줄어드는 식으로 사라져가는 방법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조민석 ...다른 한편으로 건축물과 건물이 구별되는 지점은 그 용도가 없어져도 사회에 남아 있을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을 것 같다. 설령 폐허가 되어도 이 땅에 남을 수 있다면 그건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조재원 건축가란 자신의 에고를 공공적인 도구로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 용도가 바뀌고 주인이 바뀌어도 건축물에 ‘어떤’ 태도가 남을 수 있도록. 계획 당시 공공일호가 나에게 어떤 프로젝트인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다가 이 전환의 시기가 이 건물이 ‘어떤’ 건물로 다음 세대에게 기억될 지를 가늠할 순간이란 사실이 내 개인적인 의미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기존 구조체와 노후 설비는 어떻게 보완했을까? (주한프랑스대사관) ...60년 사이에 달라진 법규 조건도 맞춰야 했다. 지진을 고려한 내진설계,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규 등에 의해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았다. 이를 충족하면서도 원형의 형태와 비율을 훼손시키지 않게 실제 프로파일과 똑같이 새로운 구조체를 제작하되, 필로티 안쪽에는 날개벽을 덧대는 구조 보강을 고려 중이다. 또, 현재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들은 최대한 따랐다. 이를테면 필로티 천장 모듈 수치를 그대로 가져왔다. 외장재 PC 패널은 구조 보강을 위해 잠시 떼어냈다가 재사용하는 시공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주택에서 도서관으로 용도가 바뀌니까 구조 보강은 필요했다. 특히 서고가 문제였다. 기존 건물에 서고를 두려면 구조 보강을 엄청나게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새로 만드는 신축 복도에 서고를 배치했다. 책 복도는 그렇게 탄생했다. 서고의 모듈이 곧 구조의 모듈이 되었다... (광안리 하얀 수녀원) 지은 지 50년이 넘었으니 건물이 온전할 수 없었다. 구조 계산을 하면 견딜 수 있는 하중 값이 0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껏 잘 쓰여온 건물이다. 그러니 질문이 생긴다. ‘과연 구조 계산 값이 기준치에 미달하면 무너뜨려야 하는가?’ 건축물 뼈대의 수명은 우리가 가늠하는 정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이 점도 오늘날의 딜레마다... (서소문역사공원) 11,000여 평 규모의 주차장 구조체에서 유지한 300대 주차 면적만큼이 우리의 ‘수명 연장’이었다. 외주부 옹벽과 기초를 활용했고, 그에 맞춰 기둥 간격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7.5×8m 모듈로 정했다. 나머지는 전부 새로 짓다시피 했다. (코스모40) 다이어그램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제안은 기존 건물에 새로운 매스가 끼어 들어가는 모양새다. 새 매스는 기둥도 기초도 기존 건물에 기대지 않고 독립된 상태다. 본래 기둥을 감싸는 식으로 기둥 네 개를 더했고, 이 기둥 다발이 3층 슬라브를 받치고 있다. 구조 면에서나 설비 면에서나 기존 공간과 새 공간이 완벽히 분리되어 있기에 기존 건물의 단열이나 내화 이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성수연방) ...새로운 기둥을 강조하기 위해서 슬래브는 가능한 한 얇아야 했다. 보통 리모델링 때 기존 건물의 수직・수평이 안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새 슬래브를 붙이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맞추다가 두께가 30~40cm까지 두꺼워진다. 우리는 상식에서 벗어나서 새 슬래브를 비뚤어진 기존 슬래브에 맞춰 시공한 덕분에 두께를 얇게 유지할 수 있었다... (공공일호)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옥상층 증축으로 인한 변화 외에는 외관상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샘터사옥의 시그니처인 담쟁이덩굴과 붉은 벽돌 모두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과거 자료를 읽어보고,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며 실내에서는 장기를 바꾼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특히 설비면에서는 완전히 뒤집혔다. 1984년 식당 자리였던 지하에 샘터파랑새극장 1관을 조성했고, 2004년에 개보수하며 지하층 설비들을 본격적으로 옥상으로 이설하기 시작했다... (플레이스원) 기존 설비는 모두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요즘 나오는 기계들이 훨씬 컴팩트해서 면적을 덜 차지했다. 덕분에 기계실이 있던 한 층을 통째로 비워 주차장을 신설했다. 신축에 비해 비용 절감은 어느 정도일까? (플레이스원) 최대 용적률, 최소 공사기간, 최소비용 이 세 가지는 흔히 클라이언트가 건축가를 압박해오는 대표적인 이슈다. 이중 최소 공사기간과 최소비용은 민간시장에서 클라이언트가 리모델링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하면 토목 및 골조 공사기간만 셈해도 수개월이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0~12개월이 소요되는 신축 프로젝트를 리모델링한다고 가정하면 최소 6개월 가량을 단축시킬 수 있다. 기간이 짧아지면 비용도 줄어든다. 우리가 다른 산업군의 제작 기술에 관심을 키우는 것도, 공법도 습식보다 건식을 선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광안리 하얀 수녀원) ...오래된 집을 사람 손으로 하나씩 뜯어가며 살릴 것과 교체할 것을 판단하는 작업이었기에 비용적인 측면에서 절약되는 점은 크게 없었다. 그중 가장 비용을 많이 들였던 건 창문 공사였다. 기존의 목재 창틀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좋았지만 단열· 방음에 취약했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바깥쪽으로 유리 창호를 새로 덧대고 는 목재 창틀은 남겨두기로 했다. 목수가 현장에서 일일이 조각하고 조립했기에 비용이 만만찮았지만 기존의 기억을 유지한 정신은 철거와 신축으로는 이룰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서소문역사공원)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은 참으로 지난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서 비용 이야기는 굉장히 심각하게 오갔는데, 애초에 사업 성격에 부합하도록 예산이 책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차장 리노베이션 비용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등 오류도 적지 않았다. 사용자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규모를 다시 축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부천아트벙커 B39) 삼정동 소각장 철거를 위해서는 약 50~60억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했다. 부천시가 일시에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액수였을 것이다. 그러던 중 재생사업 지원금은 나름의 출구 전략이 되어준 것 같다. 철거비뿐만이 아니라 공사비 절감 효과도 상당히 컸다. (코스모40) 사실 대부분의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신축 못지않은 비용이 들며 종종 신축보다 더 많이 들기도 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명확한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코스모40의 경우 증축 및 리모델링한 부분의 면적은 전체 면적의 사분의 일 정도다. 사분의 삼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결론만 이야기하면 서울시의 1㎡당 공사비 책정 가이드라인의 90% 정도까지 쓴 거로 안다. 리모델링 공사였기에 공사 과정에서 예상했던 비용보다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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